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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노트

요르으고스 란쒸모스 _the robster



Yorgos Lanthimos

첫눈이 오고 그곳의 가을 사진을 봤다.
하나의 길을 두고 은행나무가 길게 서있었다. 칠리 곤잘레스가 생각났다.
높은 음자리표 피아노 소리가 떨어지고 짙은 노란색 숲이 깔렸다.
은행나무잎은 바스락 거리지 않는다. 파도소리나 장마때 불어난 강물이 다리둑에 갈라져 흐를때 같은
무언가 살아있는 풍경이 들린다. 이미 흘러가고 사라질걸 알지만 지금 이순간만큼은 절대 울지않는.

첫눈은 쌓이지 않았다 아직.
그래서 아름다울수있다. 쌓여야하고 쌓일수있는 권리를 가지며 세상에 처음으로 내려온다는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녹을거라는걸 알면서 넓은 하늘을 떠나 고동색으로 떠나는 여행은 보라색 역광처럼 슬프다.
그러나 그만큼 아,아름, 답다. 그래서 첫눈이다. 첫눈은 그렇다.

어느순간 첫눈는 마지막 눈이되고
햇살에 다시 넓은 하늘로 돌아간다.
그 먼길을 다시 돌아갈줄 알면서 첫눈이 처음으로 내린건지 확신이 들지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야만했다.
우리가 우리를 불렀기 때문이다.
다시 또 첫눈이 되기위해 마지막눈이 되는 슬픔을 삼킨다.


올겨울은 그럴거같다. 더 슬플거같다. 작년겨울은 무언가 눈앞에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가는 장마비 였다면
올해겨울은 아주 먼, 그누구도 모르는 행성을 찾아 떠나기위해 떠날 채비를 하는 기분일거같다.
당장 지금부터가 그렇다. 뭘 챙겨야하는지, 뭘 먹을수있을지 숨은 쉴수있는지, 아니 숨이라는건 어떻게 쉬어야하는지.
그곳의 바람은 어떨지, 언제 도착하게 될지 도착은 할수있을지. 아니, 출발이 가능하기는 할지.
솔직히 채비만 하다 끝날거 같기도 하다.
아니 캐리어만 고르다 에라이 그냥 제일 큰 이민가방에 들어가 겨울잠이나 자야지 할수도 있을거같다.
다시 드는 질문, 빨간색 땡땡이 이민가방이 좋을까 검은색 땡땡이 이민가방이 좋을까?
겨울잠 자기도 힘들다.


밤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아서 밤이 길어지는 겨울에는.
귤을 열심히 까먹었다.
노란귤을 까먹으면 까먹을수록 노랑이 없는 겨울에 봄이 온거같았다.
초록이 없는건 다행이다, 너무 먼 무언가를 그리워하기엔 오늘 밤이 너무 길었다.


매순간이 첫눈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곧 다가올 마지막눈을 즐길 줄 알기까지 바라는건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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