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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그냥 말그대로
네자리 숫자인데. 무너져내리고말았다.
한나절이 지나고
바람이 조금 차가워질 무렵, 나는 반이 남은 오늘하루를 버려야만한다는걸 깨달았다.
세번을 반복했다.
손끝이떨렸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고, 그냥 아무 일도 아닌것처럼 되돌아
계단을 내려갔다.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까맣고 작은 창에서는
햇살이 뜨거울만큼 환하게 쏟아지고있었다.
바뀐 비밀번호는 뭘까라는 질문은 결코 들지않았다.
나의 진심은 뭘까 묻고 또묻고 물어서 낳은 답은
응원한다는것이였다.
나는 그 달라진 숫자 네자리가 초래한 결과를 응원한다.
동시에 세가지를 느낀다.
닿을수없는벽.
나는 그 벽을 넘을수없다.
구렁이처럼도 두더치처럼도 빨갱이처럼도 넘을수없다.
이제 우리는 물질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었다.
단순단 벽 삼팔선이 이산가족에게 얼마나 큰 절망감을 안겨줄까
깨닫게되었다.
마지막시점의 기억
현재나는 삼개월정도가 흘렀고 머리가 많이 길었다. 사각거리는 반삭에서
나오는 풋풋함은 사라진지 오래고 구질구질의 느낌도 난다.
그녀는 나를 풋풋하게 기억할까? 그렇지 않을수있지만 기억속 이미지의 나는
어쨌든 지금의 내모습은 아니다. 내기억속의 그 공간도
분명 다를 것이다. 내가 읽던 책은 다른곳에 꼽혀있을수있고
입구에 놓인 먼지도 치워졌을수있다. 나는 그 공간을어떻게 기억하는가?
갑자기 아랫입술을 나도 모르게 깨물었다. 감정이 올라온다. 컴퓨터화면에서
시선을 돌린다. 왼쪽 방구석 놓인 작은 화분만 바라보게된다. 사실 나는 지금 많이 슬프다.
추억으로서의 추억.
더이상 공유할수없다. 나과 그녀사이의 이야기를 설명할순있지만
그누구에게도 그 감정 자체를 그대로 느끼게 할수없다.
내앞에 높은 작은 연필하나에도 정말많은 이야기가있다.
늦은겨울 비엔나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눈밭위 발자욱을 남기던 그연필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지금 쓰고싶어도 어디서부터 해야할지 막막할정도다.
왜 그 연필을 사게되었는가부터 그때의 상황, 공기, 음악, 포장지, 시간, 그다음날의 계획
전달해주던 시점. 그이후의 표정. 반응 또 거기에 반응하는 나의 목소리, 그 연필로 그린 그림들.
그림이 내뿜는 공기, 거기서 숨쉬는 공간, 레오폴드에서 찍은 사진, 찍는 카메라 그 카메라로 찍은 또다른 사진.
사진뒤에 적힌 메모, 메모가 쓰인 날짜. 그날의 점심. 식당으로 가던길, 나무, 바람 추억. 그길을 걸었던 어린이날.
어린이날 듣던음악. 문득 다시듣게된 작은카페, 마시지않던 커피. 리필해달라던 국화차. 피어나는 모습. 그섬의 꽃밭. 바다
바다가 나오던 영화. 영화와 함께한 낮잠. 낮잠을 자던 의자. 의자를 가져오던 새벽. 새벽의 모닝콜, 하얀 침대시트위 휴대폰.
케른트너거리의 하얀 눈밭. 결국 다시 레오폴드미술관, 다시 그 연 필.
이제 이모든걸 나혼자 감당해야한다니.
그리고 그런 추억의 매개체들없이 추억으로써만 간직해야한다니.
너무많은추억을 한번에 담고있기는 힘들어
이런저런 물건들에 임대를 주곤했는데.
이젠 모두 내가 관리해야한다.
조금만 소홀하면 이모든건 내손안을 벗어날게 분명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추억은 바다에 가라앉겠지.
운명에 맡겨야할까. 아니면 꾸역꾸역 장부를 체크하고,
청소를 하고 빛나게 닦아야할까.
나는 부동산에 관심도 없고 돈놀이엔 자신도없다.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그 네자리 숫자가
무엇이 되었는지 알수는 없다.
상처받지않기위해 한나절 내내 변명을 했다.
지금도 시간은 흐른다. 지금도 잊혀지고 동시에 만들어지고있다.
왜 아날로그아날로그 하는지 깨달았다.
적어도 열쇠였다면 이정도까지의 무력감을 주진않을것같다.
결국오늘의 교훈은 이거다.
적어도 비밀번호 네자리보다는 철컹거리는 열쇠가
보다 덜 슬프고
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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