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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노트

오월의 마지막과 유월이 이공이공 _glenn gould

 

새벽 네시야, 우리는 세탁기를 돌리기로 했잖아. 어서 일어나라고 네시반이야 벌써. 

침대보가 우리를 깨우기 시작했다. 뭐지 잠깐만 지금은 유월이고 유월이면 여기에서 여름이 시작 될 즈음이니까. 모두 괜히 희망찬 척을 하고 웃고 달리고 막 그러던 시기 아닌가? 그런데 새벽 네시반에 고작 세탁기를 돌려야한다고? 그건 유월이 아니라 십일월의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한 오후 네시에도 할수있잖아? 거기다 침대보.. 침대보. 침대보를 보라는 말도 보자라 침대바위가 되고 딱딱한 침대에 괜히 그래 돌침대 일부러 사는 사람도 있다는데 하며 위안을 하지만 저번달에 본 유튜브 비디오에서 백년허리 영상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쩌지? 우리를 백년허리가 필요할텐데...

오후 여덟시 육분이 지나고있다. 이십시 육분이라고 부르는 게 습관이 들었다고 믿고있었는데 꼭 그런건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요즘이라고 그런걸까.. 코로나도 비자도 은행도 심지어 생전 생각 해 본 적도 없는 세금까지. 연타로 뷰로크라시 일들을 맞고 나니, 정신이 피폐해지고 있다. 그러나 항상 언제나 그러나가 있는 법. 그래서도 있고, 백년허리도 있고.. 그래 우리는 백년허리가 필요하단 말이야...

생각을 정리 하기 위해서는 바르게 앉아서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는게 중요한데 우리는 사실 그것을 언제부터.. 그래 무우닌헨이라는 이 도시에 와서 부터 하지 않았구나. 대신 펜을 들었지. 종이 위에서 말이야. 짐이 늘어날까봐 최대한 증식하는 인터넷 공간에 글을 쓰려 노력했는데 그 노력이 결국 우리를 무디게 만든다는 걸 알고 아니 이미 무뎌져서 글을 쓰지 않았던지도 모르지. 그러나 2019년 보드카를 왕창 마신 그날이후 우리는 다시 드로잉을 천천히 시작했고, 2020년이 반절 지난 지금 다시 글을 쓰는 습관을 끌어올리려 하고있다. 시도는 시도로써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시도. 시, 도. 마치 그 시에도 를 줄여 시도라고 부르는 것 같다. 시도는 알고 있을까? 시도가 얼마나 힘들며 동시에 즐거운지. 시도하고 시도해볼수 있기에 세상이 오늘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아닐까? 어찌되었든 사실 우리는 천년허리에 대해 말하고싶었고..

이제 매일 아침, 음악을 정리하며 두시간을 보내고/ 하루를 음악으로 시작하고/ 감성이라는 것이 중요해지고/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빵을 먹고/ 활자보다는 눈으로 관찰하는 시간을 지나서 / 관찰 드로잉을 하고 /

직관적으로 느끼고 / 이일에 한번씩을 청소를 하고 / 서서히 벽 정리를 하고/ 색을 바라보고 /

편지를 쓰고 / 밥을 먹고 / 장을 보러가고/ 불평이 아닌 비판을 하고 / 칭찬을 하고 /

이 방을 바라보고 / 사랑하는 책들을 보고 / 소리내어 기형도를 읽고 / 매일 한가지 그림을 카피하고 /

하루가 지난후 감상과 일기를 쓰고 / 읽은 책과 영화와 음악을 기록하고 /

챙겨야 할 것들을 꼭 챙기고 / 미술관에서 세잔을 바라보고 / 깊이 숨을 쉬며 더 깊이 숨을 쉬며/

맛있는 것을 많이 먹으며 / 목선을 곧게 / 친절하지만 귀찮게 / 마음은 따뜻하게 /

그리워하기 또 그리워하기.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기. 호탕하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되는거야 그것도 항상 늘 아침에 말이야. 그게 중요해. 깨끗한 붓으로 깨끗한 색과 함께

오랜만에 글을 써서 그런가 말도 안되고 두서도 없고, 기간을 지났지만 일보후퇴한 느낌이고 그래도 글렌 굴드의 베토벤을 들으며 한글자 한글자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항상 우리가 우리의 복을 걷어 차기도 하고 사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괜히 여기에서 갇혀 있지만 일종의 제한은 오히려 새로운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초기작이 이상하게 좋기도 한 것.

아홉시다. 십육분. 톡톡 누르는 저 시간과 공간의 깊이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이미 어디로 가고있는 것 일까.

매일 글렌굴드의 베토벤을 들으며 보내보자. 바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