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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노트

여기는 리오입니다 그런데 _Sufjan Stevens




여기는 리오에요
일주일이구요.

뜨거웠던 리오는 한권의 노트와 몇장의 드로잉으로 남았다. 뜨거움 그 뜨거움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뜨거움? 공기의? 색의 혹은 태양의? 우리는 이제부터 뜨거움을 리오의 파도라 부르겠다. 그 허공을 향해 치는 파도 그리고 그 속을 헤엄치려 살아남으려 타고 넘으려 바둥거리는 바둥거림을 즐기는 서퍼들. 그것이 뜨거움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새벽 여섯시의 조깅? 혹은 파벨라 파벨라라고 하며 모든 정신을 놓은듯 보이지만 매서운 눈초리를 가지고 있는 그 사람들? 그들인가? 그 눈빛? 혹은 그 새벽의 칼부림? 도망감?
 책도 칼라도 혹은 그 무엇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사람위에는 남아시아의 뜨거움과는 다른 어딘가 서늘한 남미의 아마존의 기운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두달이 지났을까
새로운 그림이 태어나고 손가락을 더 접기도 전에 일년. 이라는 시간이 지나 어떤 큰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사실 큰 사건이랄 것도 없다. 왜? 왜냐고? 해결할수있으니까. 해결할수있으니까 해결할수있으니까. 해결할수... 해결...... 

해결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해법을 찾아 결론 짓는다는 말일까? 해, 결, 되면 문제는 끝나는 것일까. 문제가 끝나면 문제는 사라지는 것일까? 
문제가 계속 문제로 남아있으면 어쩌면 그것이 정말로 해결되는 것이 아닐까?

나무와 숲으로 글을쓰던 날을 지나 바다를 그리워 하던 시간을 지나 엘그레코에 도착했다.
마드리드를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질것같은 감정은 그대로이고 우리는 3이라는 숫자를 향해 가고있다. 뜨거움 벅차오르는 순간을 향해서...
너의 눈에는 우주가 있어
정말 미묘한 색감을 가지고있어. 아니 이건 정말이야.
여기있기에는 좀 아까운데..
그런말을 들을 기회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름다울 수 있는 권리. 인간이 아니라 생 그자체로서 존재하려 노력할 권리. 넘어질 권리. 일어날 권리. 망가질 권리.
그 순간순간에서 빛을 찾아내려 노력 할 권리.
흘러가는 아무것도 읽지않고 보지않고
보아야 할것만 보겠다. 우리의 남은 육개월은 그럴것이다. 

오늘은 삼일이 지난날이라고 부를수 있는 날이다.
비자와 휴대폰과 학생증과 교통권을 잃어버리고
화장실에 있던 한명의 흑인 여인과 한명의 흑인 남성에게 위안을 받았으며
여섯명의 사람이 번호를 물어본지 72시간이 지난날이란 말이다.

아무것도 이상할게 없는 데 이상한 순간과 사람과 공간, 공기가 있다.
그리고 오늘은 비오는 거리를 음악과 함께 다시 걷게 된 날이라고 불러야 할 날이다.

마드리드에 가고싶다. 톨레도에 가고싶다. 카메라를 사고싶다. 바람을 맞고싶다. 나무를 보고싶다. 하늘을 보고싶다.

네 그래요
그래요뭐.
'한번뿐인 인생 기회가 주어졌다면 끝없이 불태워보자. 뜨거운 2019년을 향하여-'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