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ㅡ 자기는 '내가 내 마음으로 이해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동정심을 느낄수잇기 때문이라는것이다. 그리고 그는 독일에서 수년전에 말한 것을 강조했다. 그것은 그가 제 3국의 행위에 참여한 사람들과는 단지 형식적인 의미에서만 공통적인 인간성을 갖고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고결한 태도는 아이히만을 재판해야하는 사람들이 지닐 여유가있는 태도라기 보다는 차라리 사치스러운 사람들의 태도라고 할수있을것이다. 왜냐하면 재판관들의 법은 우리가 고발하고 재판하고 정죄한 사람들과 동일한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전제하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있는 한, 부버는 아이히만의 처형문제에 대해 공개적인 기록을 계속해서 남긴 유일한 철자였다. 재판이 시작하기 직건 카를 야스퍼스는 나중에 모나트에 간행된 바젤에 있는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이 재판은 국제제판소에서 다루어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아이히만과 그의 행위가 제기한 핵심문제를 부버가 고차원적인 방식으로 얼버무리고 있음을 알게 된것은 실망스런 일이었다.
ㅡ 사형제도를 원칙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반대한 사람들로부터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은 타탕한 채로 있는데 , 왜냐하면 그들은 이러한 특별한 경우를 위해 자신의 주장을 구체화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번 경우가 자신들이 싸울만한 아주 유망한 경우라고 느끼지 못한것같다.
ㅡ 아돌프 아이히만은 아주 근엄한 태도로 교수대로 걸어갔다. 그는 붉은 포도주 한병을 요구했고 그 절반을 마겼다. 그는 그에게 성서를 읽어주겠다고 제안한 개신교 목사 윌리엄 헐 목사의 도움을 거절했다. 그는 두 시간밖에 더 살수 없기 때문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했다. 그는 자신의 감방에서 형장에 이르는 50야드를 조용히 그리고 꼿곳이 걸어갔다. 간수들이 그의 발목과 무릎을 묵자 그는 간수들에게 헐렁하게 묶어서 자신이 독바로 설수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검은색두건을 머리에 스겠냐고 물었을때 그는 나는 그것이 필요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고있었다. 그의 마지막 말로 남긴 기괴한 어리석음보다도 이 점을 더 분명히 증명할수있는것은 없을것이다. 그는 자신이 신을 믿는 자라고 분명히 진술하면서 자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죽음 이후의 삶을 믿지 않는 다는 점을 일반적인 나치스 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잠시후면 여러문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날것입니다. 이것이 모든사람의 운명입니다. 독일 만세 아르헨티나만세 오스트리아 만세 나는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고 말햇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장례연설에서 사용되는 상투어를 생각해냈다. 교수대에서 그의 기억은 그에게 마지막 속임수를 부렸던것이다. 그의 정신은 의기양양하게 되었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것을 잊고있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을 요약하고있는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을.
ㅡ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하기 시작하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모든 일반적인 질문들 (왜 독일인들이었는가. 왜 그것이 유대인이었는가. 전체주의 통치의 본질은 무엇인가?)은 한 사람이 재판을 받고있는 범죄가 어떤 성격과 정의가 선포될 대상인 피고의 본성에 대한 문제보다 훨씬더 중요하다고 주장할수있을것이다. 또한 제 2차 세계대전이래로 사법체계가 반복적으로 대항해왔던 이같은 특별한 유형의 범죄와 점죄자를 우리의 현재의 사법체계가 얼마나 잘 다룰수있는가에대한 질문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주장할수있을것이다.
ㅡ 나는 재판에 직면한 한사람이 주연한 현상을 엄격한 사실적 차원에서만 지적하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한것이다. 아이히만은 이아고도 멕베스도 아니었고 도한 리처드 3세처럼 악인임을 입증하기로 결심하는것은 그의 마음과는 전혀 동떨어져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데 각별히 근면한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가갖고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명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는 않았을것이다. 이 문제를 흔이 하는 말로하면 그는 '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것이다. ' 그로하여금 경찰 심문을 담당한 독일계 유대인과 마주않아 자신의 마음을 그사람앞에 솓아부으며 어떻게 자지가 친위대의중령의 지위밖에 오르지 못했고 또 자지가 진금하지 못한것이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또다시 설명하면서 4개월동안 앉아있을수 있엇던것은 바로 이같은 상상력이 결여 때문이었다. 원칙적으로 그는 이 모든일의 의미에 대해 아주 잘 알고있었고, 그래서 법정에서 있었던 최후 진술에서 그는 나치정부가 처방한 가치의 재평가에대해 말한것이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사람이 되게한것은 순전한 무사유였다. sheer thoughtlessness . 그리고 만일 이것이 평범한것이고 심지어 우스꽝스런 것이라면, 만일 이 세상의 최고의 의지를 가지고서도 아이히만에게서 어떠한 극악무도하고 악마적인 심연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이는 그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과 아직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더구나 교수대 아래 서있는 사람이 자신이 생전에 장례식장에서 들었던것 외에 생각해낼수없었다는 것은 , 그리고 이러한 고상한 말이 자기 자신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완전히 모호하게 만들어버렸다는 것은 분명코 아주 일상적이라고 할수는 없을것이다.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수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수있는 교훈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교훈이지 현상에 대한 설명도 아니고 그에대한 이론도 아니다.
ㅡ 훨씬더 복잡해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상 무사유와 악의 이상한 상호연관성을 검토하는것보다 훨신더 단순한 것은 어떤한 종류의 점죄가 여기에 실제로 개입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범죄는 게다가 모든정도에 있어서 전례가없는 것이다. 이전에는 알려지지않은 범죄를 지칭하기 위해 분명하게 도입된 대량학살 개념은 비록 어느정도 까지는 적용 가능하지만 민족전체에 대한 학살이 전례가 없었던일이 아니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볼때 전적으로 적합한것은 아니다. 이는 고대에서는 일상적인 명령이었고, 식민지를 갖고 제국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은 이런 종류의 다소 성공적인 시도들의수많은 예를 제공한다. '행정적 대학살'이라는 표현이 청구서를 더 잘채울수있는것 같다. 이용어는 영국의 제국주의와 연관이있다. 영국은 인도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 그러한 절차들을 고의적으로 거부했다. 이표현은 그런 야수적인 행위가 오직 외국민족이나 다른 인종에 대해서만 저질러 질수있다는 편견을 불식시킨다는 장점을 가지고있다. 히틀러는 그의 대량학살을 치료불가능한 환자들에게 안락사를 허용함으로써 시작ㅎㅆ다는것 그리고 그는 자신의 학살계획을 유전적으로 손상을 입은 독일인들을 제거함으로써 마무리하려고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외에도 이러한 종류의 살인이 어던 특정한 집단을 지향할수있다는 점. 즉 선별의 원칙이 상황적 요인에만 의존하고 있다는것은 명백하다. 멀지않은 미래의 자동화된 경제가운데 인간은 지능지수가 일정수준이하인 모든 사람들을 제거하려는 유혹을 맏을수도있다는 것은 상당히 상상이 가능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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