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읽어내는 일 _ jamian juliano vill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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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차 엔진소리에 잠에서 깬지 여덟시간이 지났다.
오늘도 그녀는 구슬공방을 가기위해 우리를 기다리는중이다. 느티나무는 버들나무같은 소리를 내고있었고, 그녀는 씨름판 모래알을 가만히 바라보며 모래알에 대한 생각을 한다. 그녀는 나는 모래알보다 작은사람 같다고 중얼거렸고, 우리는 그녀에게 걸어가고있다. 그녀는 남색 노란색 실내화 가방을 건내 받고는 내일 준비물이 없느냐고 묻는다. 우리가 없다고한다. 대신 가정통신문은 있다고하며 알림장사이 네번 접은 누런 갱지종이를 꺼낸다. 그녀는 우유급식 안내문을 읽으며 한글자 한글자 구슬을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색으로 구슬을 꿰어야 하는가.
구슬공방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않았지만 점심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시장에 들린다. 우리는 시락국을 좋아하고 보리밥을 좋아하는데 그녀는 돈까스가 먹고싶었다. 계란을 입힌 분홍소세지 하고 그녀는 중얼거린다.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지않았고, 그녀는 우리의 보리밥을 비비는 중이었다. 우리는 콩나물국을 더 먹고 싶다고 중얼거렸고 그녀는 그릇을 들고 주인아줌마에게 뭐라뭐라 말한 후 더 큰 그릇에 콩나물국을 받아온다. 우리는 다시 또 콩나물국을 비웠고, 더 먹고싶다는 그녀의 질문에 비빔밥만 꾸역꾸역 씹어삼켰다. 그녀는 하늘이 보고싶었다. 대관령 짙은 하늘 넓은 배추밭, 고랭지 밭일을 하다보면 배추한잎 몰래 뜯어먹을때 그 달큼함, 툭하고 터지는 그 뽀얀 배춧잎. 오늘은 하얀색 연두색 하늘색 구슬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리를 떠는 우리에게 보리밥집 주인아줌마는 다리떨면 목이 나간다며 한소리한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계산을 하고 서둘러 가게를 나간다. 하늘이 너무 너무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버스를 탈까 생각 해보았지만 이미 우리는 버스정류장을 지나 달리기를 하고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죽으면 어떨까하고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갑자기 심장마비가 오거나, 트럭이 덮치거나, 공사장 철골이 쓰러지거나 하는 사고가 일어나 아무런 고통없이 죽으면 어떨까. 고통없이 죽는건 기쁜일이지라고 그녀는 중얼댄다. 우리는 여전히 달리는중이다.
구슬공방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녀는 갑자기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이미 구슬공방 앞 에어콘 실외기 바람을 맞고있다. 그녀는 돌아가고싶다. 엄마의 보지로 돌아가고싶다. 거기서 구슬을 꿰고싶다. 하나하나 낙시줄에 구슬을 꿰면서 그녀는 엄마의 보지를 핥고싶다.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보지 입구를 한땀한땀 하얀색 연두색 하늘색 구슬로 꿰매고싶다. 그녀는 발걸음을 늦추며 구슬공방 건너편 정육점을 바라본다. 빨간 앞치마를 입은 또다른 그녀는 웅웅대는 선풍기소리와 오전뉴스소리에 반박자 느린 막춤을 추고있다. 그녀는 정육점으로 뛰어들어가 함께 막춤을 추기 시작한다. 목살과 돼지머리가 선풍기 날개로 디제잉을 시작한다. 춤을 춘다. 낚싯줄이 구슬 타고 돌듯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서로의 보지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춤을 춘다. 춤을, 춤을. 그 춤을.
나는 춤을 출때 마다 그녀를 생각했다. 정육점 조명 아래 그녀를. 팔꿈치가 움직이는 각도, 복숭아뼈가 꿈찔때는 박자. 옆구리살이 접히는 주름갯수, 귓볼아래 분홍 그림자. 그런것들. 무엇을 할수있을까. 며칠전은 그녀의 생일이었고, ㅊㅋ 두개의 글자로 속눈썹 속죄를 씻어낼수있을까. 내가 받을 이 모든걸 어떻게 갚을수있을까? 천만원? 천만원이면 가능할까? 그녀의 평생을 못먹고 못입고 못살아서 만든 천만원이면 가능할까. 나는 왜 갚고싶은 것일까 구슬을 못꿰어서?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을 갚아야 한다는 이유를 찾아가는 게 아닐까. 뭘까
2021 10 25
저때의 천만원이라는 글자를 보니... 새삼 참 새삼이란 생각이 든다. 진짜 세상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