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노트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며 보낸 하루_ 3호선 버터플라이

애도가 2014. 10. 15. 00:23



내가 잘했음 좋겠다 뭐 그런 의지로운 말로 마무리하고싶지 않다
그녀가, 
음, 그다음 동사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쨌든. 그녀가. 
나는 그녀가. 그녀 보다는 그녀가. 이 세글자로 오늘을 닫을 계획이다.



고구마 좀 삶아봐

그건 그녀의 첫 마디였다.


가방을 챙기고 풀고 무게를 재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정리를 하고

하루의 절정으로 향하는 전환점은

그녀의 휴대폰 요금제를 바꿔주던때였다.


이십대가 할수있는 것들은 주로 디지털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십대는 경제적능력도 부족하고 인생의 경험은 더더욱 부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검색을 잘하고 요령을 피울줄 알며 때론 버스를 타기도하니까.


길게 쓰고싶지않다.

오늘했던일들


그녀와 내가 처음 만나던 이십년전 일기를 직접 읽어주었다.

몰래 읽어보곤 했는데 소리내어 읽어보긴 처음이었다.

그녀는 정말 순수했고 맑았고 진실했다.

지금 나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슬프다. 만약 내가 순수하고 맑고 진실하다면

오늘같은 슬픔이 우리를 덮지도 않았을것이다.


청소를 했다.

깨끗깨끗 정말 열심히 도와주며 청소를 했다.

원래 열심히 도와주긴했지만 한가지 달랐던점은 내가 촬영을 했다는것이다.

이십분 남짓한 이미지의 연속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다. (솔직하게 고백하고싶다.)

손바닥 보다 작은 네모난 창 안의 파란 행주는 그 어떤 짙은 바다보다 감동적이었다.

닦고 또 닦고 닦고, 또 닦았다.

내가 여기서 살고있어요라는 흔적은 모두 지우고싶었다.

내가여기서 살았었답니다 라는 과거형으로 남기를 바랬다.

그게 사실이니까.


밥을 두그릇 먹었다.

배고프진 않았지만 잘먹는 모습을 보여주고싶었고

약간 퍽퍽한 두부가 들어있는 된장국과 함께 흰 쌀밥을 올올이 삼켰다.

청소를 했던 영상을 보며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바닥이 보였고, 마지막 밤이 다가오고있었다.


음악을 받았다.

만남은 언제나 우연이 아니니까.


블로그를 정리한다.

그녀는 바닥에 누워자다, 들어갔고,

나는 지금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여 블로그를 정리하기위해 들어왔다.

한동안 방치되었던 공간은 검정색처럼 죽어있었다.

검정색은 사실 죽어있는 색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항상 공간과 구도를 살리는 역할을 하니까)

나는 뭔가를 애도하기위해 검정을 택한건 사실이니까.

묵혀뒀던 글들을 다시 쓰고, 생각도 하고. 정리도한다.

나른해지지않으면서 불편하지는 않은 이곳이 나는 꽤 맘에 든다.


이제,

매일 아침 웅성거리는 뉴스소리로 깰수없겠지.

항상 모든걸 낯설게 하기위해 부단히 노력했는데,

불안과 두려움 뭐 그런것보다 

남겨질 것들에 대한 걱정과 싸우는 중이다.

결투신청을 받은지는 오래되었는데 미적거리고있으니

어느순간 선방이 날아왔다. 나는 피하고 도망가고 신고도해보고 (미친척도해봤음) 별걸 다해봤지만

맞서는 것 외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어제야 알았다.


역시. 싸움은 내 체질이 아니다.

바닥만 보다가 하늘만 보다가 속눈썹 한번 바라보지도 못하고

허공에 팔돌리기만 하는중이다.


오늘도 맥락은 없다.

오늘,

한달에 세번만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던 초등학교 2학년생의 일기는

이모든 자초지종을 설명해주는 아주 중요한 단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