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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노트

몇일의 집으로 _Camille



그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건 비즈니스 클래스잖아.

그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걷고 또 걸어간다.

아 아니에요 근데 그건 그렇지 않아요

그래 알았어 잠깐 거기 앉아봐 사진찍어줄게

족발 삼겹살 만두아침 코카콜라 제로 경복궁이 지나고 숲을 지나 꽃무늬 도쿄


바로 그때문에 독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유명세라는 것은 일종의 놀이 같은 것이라 반대급부가 항상 존재할 수 밖에 없어요. 아이들이 처음 만났을때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세요. 친하게 어울리기 전에 먼저 서로에 대해 탐색하며 상대방의 장난감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처음 독일에 왔을때 저는 스스로 원하는 것과 별개로 이곳에서는 뭔가 전혀 다른것이 요구된다는것을 곧바로 알게 되었어요. 1980년대 중반 저에게 가장 중요했던 문제는 바로 제 자신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리게티 밑에서 공부하는 동안 일생일대의 개인적 음악적 위기에 빠져버렸어요. 그래서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중요한것은 저만의 고유한 위치였거든요. 내음악은 뭔가? 대체 어떻게 작곡을 해야할까? 유럽으로 온 후 저에게 닥친 문와적 충격을 극복해야만 했습니다. 정신적으로 넘어야 할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이미 활동을 하고있는 작곡가인데 그냥 자기 길을 계속 가면되지 무엇 때문에 리게티에게 갔느냐며 의심스레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는 제가 그렇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당시 추구했던 양식적 경향에 따라 쉬지않고 계속 작품을 위촉받고 곡을 써내기를 원했어요. 하지만 오히려 저는 그 모든 것들을 처름부터 다시 질문해봐야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지요.

 물론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현대음악 진영을 둘러보면서 이곳 페스티벌에 곡을 발표하려면 뭔가 한국적인 전통을 가미해 작곡해야한다는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시아인이니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저에게 그런것을 기대합니다. 80년대에는 그러함이 거의 의무사항처럼 보였어요. 당시 제가 다소 순진했을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내 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습니다.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의 위험을 알아차렸던 겁니다. 저는 우선 제 자신을 찾고 싶었습니다. 외부의 주목이나 명성을 중요치 않았어요. 그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가끔 인터뷰도 하고 잡지에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제가 이분야에서 활동하며 수행하는 하나의 역할 때문이지 원칙적으로 저에게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에요.


오늘에서야 삼주가 지났다는 걸 깨달았고 여기는 너의 집이다.